준비없이 찾아온 아이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된 건 결혼 후 만 2년이 조금 안되던 작년 6월쯤 이었어요.
저희 부부는 결혼 후 바로 아이를 갖지 않고, 신혼을 좀 즐기고, 또 제가 그때 당시에 부동산 공부를 한답시고 임장을 굉장히 열심히 다니던 때여서, 투자를 하고 나서 아이를 갖자는 생각으로 임신 계획을 미루고 있었는데요.
제 나이 만 31살, 남편 나이 만 35살이다 보니, 양가 어른들께서 미룰수록 안좋다, 살짝씩 말씀을 주시기도 했고 저희도 이제 슬슬 준비를 해볼까? 하면서 피임을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한뒤 정말 바로, 저희에게 아기가 찾아왔어요.
매달 생리 기간이 규칙적이었는데, 유난히 생리가 늦다고 생각된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전날밤 혹시 몰라 사두었던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줄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신 5주차쯤이라 임신 확인선도 선명했기에, 바로 병원을 찾았고, 그날 바로 아기집과 난황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되게 빠르게, 어찌보면 쉽게, 아이가 찾아왔다 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남편도, 저도, 얼떨떨해 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임장을 다니면서 오줌배도 아니고 똥배도 아닌데 뭔가 배 아랫쪽이 계속 쿡쿡 찔러 걸음을 멈춰서게 할 정도의 통증이 있었어요. 하루에 3만보 이상 걸어다니던 시절인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때의 저는 저는 임장을 다닌다고 운동도 정말 부족한 상태였고, 매일 투자공부에 밤을 새기도 해서 체력적으로 굉장히 몸이 좋지 않던 때였어요.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네요..
그렇게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하고, 2주 뒤에 다시 아기 심장소리를 들으러 병원을 찾았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초음파를 하기위해 누웠는데, 진료실을 감싸던 그때의 적막과 긴장감이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당연히 들려야할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고, 선생님은 혹시나 해서 여러번 제 배의 여기저기를 눌러보셨지만, 잘 모르는 제가 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가 느껴졌어요.
"아..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네요."
거짓말같은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알면서도, "그럼 유산된건가요..?" 라고 물을 수 밖에 없었고, "네.. 그런것 같네요." 라는 안타까운 선생님의 목소리를 뒤로한채 다시 주섬주섬 바지를 올리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사실 유산이라는 건, 저에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예상치 못하게 빠르게 찾아와준 아이, 노산도 아니었고, 그런 불행이 저에게는 없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결국 저는 임신 7주차 계류유산이라는 진단을 받고, 남아있는 아기집을 긁어내기 위한 소파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궁에서 가급적 깔끔하게 아기집을 제거하기 위해 저는 소파술을 권유 받았었고, 당일 수술은 어려워 그 다음날 예약을 잡고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너무 몸을 무리해서 그런걸까요..?"
괜히 제 탓인것만 같아, 선생님께 여쭤보았고, 선생님께서는 "유전자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 이렇게 초기에 유산되는 경우는 그냥 유전자가 약한 아이가 유산이 된거니 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집에 돌아와 혹시 내가 뭘 잘못한걸까, 하는 걱정에 수많은 유튜브, 블로그 글들을 찾아보았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산모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격한 운동을 해도 살아남는 아이는 살아남고, 유산될 아이는 유산된다, 자궁에서 제 할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거다.." 라고 말씀해주셔서,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소파술 후 1주일간 휴가를 위해 알리고, 주변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생각보다 제 주변에도 유산 후 아이를 갖게된 분들이 많더라구요. 정말 따뜻하고 감사한 위로를 많이 해주시고.. 약도 선물해주시고.. 그래서 그 시기에 멘탈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겠지? 라는 용기도 얻을 수 있었고요.
계류유산 판정, 소파술..
소파술을 받는 날, 긴장된 몸과 마음으로 남편과 병원을 찾았어요.
체감상 거의 1시간? 가까이 자궁 입구가 넓어지는 주사제 같은것을 맞고(가물가물), 수술방으로 누워 마취제를 맞고.. 일어나보니 수술은 끝나 있었습니다.
수술은 15분~20분 정도로 굉장히 금방 진행되었고, 제 몸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통증 같은건 없었습니다.
수술 후에도 소파술 때문에 몸이 아프다거나, 안좋아진 것은 없었고, 다행히 유착도 없었어요.
인생 처음 하는 수술이고, 다신 없었으면 하는 수술이지만, 혹시 앞두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그냥 다시 아기를 만나기 위해 내 자궁 건강을 다시 지키는 수술이라고, 응원해드리고 싶어요!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난뒤 선생님과 다시 진료를 보면서,
수술 후 3주안에 다시 생리가 시작할거고, 두번째 생리가 끝나면 임신 준비를 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첫 생리가 시작한 후부터 임신 후 12주까지는 유산 방지를 위해 아스피린을 복용할 수 있도록 처방해 주셨어요.
그렇게 수술 후 생리가 잘 시작해야 할텐데 (이렇게 생리를 기다려본 적은 또 처음..) 하면서 3주를 기다렸고, 3주 거의 막바지가 되어서야 (이사이에 선생님한테 생리가 시작을 안해요 ㅠㅠ 하며 또 문의..) 생리가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스피린을 먹으면서, 두번째 생리까지 잘 지나고, 임신 준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어요.
임신준비 다시 시작, 배란 테스트기 사용
소파술 후, 세 번의 생리 싸이클을 마치고, 저희는 다시 임신 준비를 시작했어요.
원장님께서는 두 번만 지나고 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유튜브에서는 세 번이 안전하다고 하는 선생님들도 계셔서, 저희는 그냥 세 번의 생리가 끝나고 준비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임신 성공을 위해 여러 유튜브들을 찾아보면, 배란기에 무조건 자주(가능한 이틀에 한번씩) 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사실 이 때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소파술 후 다시 준비하는 것이 저를 조금 우울하게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래도 한번 소중한 생명을 떠나보내고 나니, 임신이 더 간절해 졌어요.
유산이라는 아픔을 겪고나니, 다시 찾아올 생명이 더 소중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는 배란기에 제대로 맞춰서 열심히 노력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배란테스트기를 구매했습니다.
제가 사용한건 '아이원해 배란 테스트기' 였는데요.
생리가 끝나고 배란기 예측 시기부터 하루에 한번씩 측정해가면서 농도가 진해지길 기다렸다가, 가장 진한 농도일 때가 배란일이라고 예측하고 임신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입니다.
정확도는 좋았던 것 같은데, 사실 저는 매달 생리가 규칙적이기도 했고, 생리 기간을 헤이문이나 핑크다이어리 같은 생리주기 관리 어플로 항상 기록하고 있었어서, 거기서 나오는 배란기와 거의 일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 사용하고 그 이후부터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임신 준비를 시작한 첫달에, 아쉽게도 배란기 이후 다시 생리가 시작되었고, 이번엔 안되었나보다.. 그래, 한번에 될 수가 없지. 하면서 두번째 달에 다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리가 계속 시작하지 않고, 착상혈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어요.
사실 착상혈은 이전 임신때는 보지 못한 증상인데, 어두스름한 갈색 비슷한 질 분비물이 2-3일 정도 비치길래, 찾아보니 그게 착상혈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엔 성공인가?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정말 5-6개는 썼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때마다 결과는 항상 너무도 선명한 대조선.. 그리고 너무도 투명한 임신 확인선..ㅎㅎ
그렇게 몇번이나 테스트를 하면서, 이번엔 아닌가보다.. 근데 왜 생리는 시작을 안하지? 기대와 걱정을 함께 안고 한달을 보냈습니다.
병원과 함께 만반의 준비
그렇게 생리를 하지 않은지 1.5개월이 지나가고.. 빨리 임신 준비를 다시 해야 하는데, 갑자기 월경이 불규칙해지자 불안했던 저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료를 받고, 초음파를 통해 자궁 상태를 살피면서, 다음주 쯤이면 생리가 시작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란 유도제 페마라정(난자 질을 높여주는 약)을 처방받고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하고 돌아왔는데요.
이날 진료를 마치고는 임신준비에 좋은 영양제에 대한 설명도 듣고 영양제를 추가로 구입하기도 했는데요. 일단 이노시톨을 구입했습니다. 저는 약하게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있기도 했고, 수정부터 착상, 배아발달, 등등 임산부들에게 다방면에 도움이 되어 많이들 먹는 약이라 추가 처방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난임 병원에서 많이 추천한다는 '랄츠비 퍼틸 액티브 우먼'도 새로 구입했습니다. 가격이 8만원 정도였나.. 꽤 비쌌는데.. 간절해진 만큼, 영양제 하나라도 더먹자! 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다행히 그 다음주에 바로 생리가 시작되었고, 생리 2일째부터 이노시톨을 복용하고 영양제도 먹으며 저의 몸을 임신에 최적화(ㅎㅎ) 시키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이 시기에 정말 열심히 했던 건 약 꼬박꼬박 챙겨먹기 + 그리고 매일아침 1시간씩 헬스장에서 운동하기 였어요. 몰랐는데, 행복한 돼지였던 제가 어느새 과체중에 아슬아슬하게 가까워지고 있더라구요.
임신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체중관리라고 해서, 정말 매일아침 빼놓지 않고 운동을 나가 근력운동과 유산소를 1시간이라도 꼭 하고 돌아왔습니다.
생리 시작 후 10일째에 다시 병원을 찾았고, 배란 유도주사를 맞고, 초음파를 보며 예측한 배란일을 받아(숙제하는 날..!) 왔어요. 그리고 자궁 내막이 살짝 얇아져 있는 상태라 착상을 위한 토양인 자궁 내막을 두껍게 해주기 위한 프로기노바를 처방 받았습니다.
뭔가 이렇게 꼬박꼬박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면서 나의 상황에 맞게 주사/약을 받고, 임신 준비를 하니 정말 임신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왜 주변에서 임신을 경험하신 분들이 "최대한 빠르게 병원에 가라, 그게 제일 효율적이다" 라고 하시는지 알 것 같기도 했어요. 그냥 나 혼자 배란테스트기로 시도해보고, 하는 노력보다 병원에서 선생님과 함께 준비하는 것이 더 확실한 한방(!) 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다시 찾아온 희망
그렇게 병원에서 원장님과 함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도한 두 번째 임신.
배란일을 받고, 배란일 당일은 물론이고 전후로도 1-2일에 한번은 꼭 시도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배란기 이후 10-14일 정도를 기다렸습니다.
이 때는 제가 매일매일 몸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져서 증상을 상세히 기록했었는데요.
나중에 찾아보니 다 임신/착상기의 증상이었던 것 같아요.
배란일 +9일
밤에 자다가 갑자기 오한이 온것처럼 추워함
배란일 +11~+13일
*임신 테스트기 희끄무리한 한줄 확인!*
착상혈 비치기 시작. (3일정도)
하품이 많이 나오고 계속 졸리고 오른쪽 사타구니쪽 통증이 있음 (알고보니 나중에 오른쪽 난소에서 착상이 되었어요)
배란일 +14일
착상혈 현저히 줄어들었고, 오래 앉아 일하다 보면 배 아랫쪽이 콕콕 찌릿 당기고 아픔
하지만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의 통증은 아님
배란일 +15일 이후
늘 밤 12시 전후로 자던 내가 밤 9시-10시만 되어도 졸려서 잠에 듦.
자다가 항상 새벽 4시쯤에 화장실 가려고 깸
조금만 먹어도 금방 배가 부름, 그리고 금방 배가 꺼짐....
변비증상 (CCA 주스 덕분에 약한 정도)
두번째 아기집 확인
배란일 이후 13일차에, 드디어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줄을 확인했고, 어차피 너무 이른 시기에는 병원에 가도 확인을 할 수 없다지만.. 착상혈도 괜히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에 저희는 배란일 이후 16일차, 마지막 생리 시작일 이후 4주가 흘렀을 즈음 병원을 다시 찾았어요.
역시나 초음파 상으로는 아기집이 아직 보이지 않아서, 혈액검사를 하고 왔는데요.
혈액검사는 전날 오후에 하면 다음날 아침에야 결과를 받을 수 있어서, 설렘반 긴장반의 마음으로 원장님의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병원이 오픈하기도 전 시간에 걸려온 전화!
"수치가 900 이상으로 나왔네요. 임신 맞습니다 ^^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오면 아기집 볼 수 있겠네요"
수치에 따라서 임신의 정도,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정말 아기집 보기 직전에 병원을 찾아갔던 거였어요 ㅎㅎ (기다림은 모르는 엄마)
그래서 너무나 기쁜 소식을 안고, 바로 다음주 월요일에 병원을 찾아 드디어 아기집을 확인했습니다.
유산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다 공감하실텐데,
임신 확인을 받고서도.. 아기집 초음파를 보러 가는 그 시간과 초음파를 보기 위해 눕는 그 순간이 얼마나 떨리고 긴장 되는지 몰라요. 아마도 이 긴장은 심장 소리를 들을 때 까지도 계속될 것 같은데요.
다행히 이날 아기집이 잘 만들어진걸 확인했고, 아직 4주차 5일째 밖에 되지 않던 때라 난황까지는 확인하지 못해, 그 다음주에는 난황을 확인하고, 그 다음주에는 심장소리를 들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찾아와준 아기가 너무 고마워 이번에는 정말 초기이지만 태명도 빠르게 지었어요.
엄마 배에서 찰떡같이 붙어서 떨어지지 말고 잘 있어라~ 하는 마음으로, "찰떡이".
찰떡이는 집을 잘 짓고 있을까요?
지난번 유산 때와는 달리, 저는 5주차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이게 입덧인가? 하는 증상을 겪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공복상태가 되면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고, 뭐라도 입에 넣으면 괜찮아지고 있어요.
이전 유산 때보다는 임신의 증상이 조금씩 더 보여서 기쁘면서도, 아직까지는 안심하지 못하고 계속 걱정인 상태.. 곧 난황을 확인하고, 심장소리를 듣고 나서 다시 블로그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
저의 경험담이 예상치 못한 계류유산 후 상심한 분들에게 작은 희망과 위로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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